새벽 3시, 늘 같은 손님
박도윤 씨(가명, 24세)는 대학을 휴학하고 학비를 모으기 위해 심야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세 달째였다.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손님이 뜸한 시간대라 시급도 높고 크게 힘들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문제는 늘 같은 시각에 찾아오는 손님이었다.
정확히 새벽 3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박 씨는 시계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손님이었다.
키가 크지도 작지도 않은, 헐렁한 회색 옷을 입은 사람. 매번 곧장 유제품 냉장고로 걸어가 문을 열고, 우유 한 팩만 꺼내 들고는 계산대 쪽으로 다가왔다.
우유 한 팩, 그리고 사라지는 얼굴
이상한 점을 처음 느낀 건 근무 2주 차였다. 손님이 계산대 앞에 우유를 내려놓았는데, 박 씨는 그 얼굴을 도무지 기억할 수 없었다.
분명 방금 바로 눈앞에서 봤는데. 카드를 받아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건네고,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까지 나눴는데. 손님이 문을 나서는 순간, 그 얼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듯 사라졌다.
어떤 날은 계산조차 하지 않았다. 우유를 집어 든 손님은 계산대를 그냥 지나쳐 자동문 밖으로 나가버렸다. 박 씨가 놀라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음 날 재고를 확인하면, 분명 우유 하나가 비어 있었다.
박 씨는 처음엔 자신이 착각한 거라 생각했다.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 손님은 매일 새벽 3시, 정확히 같은 시각에 나타났다.
그 칸에만 내려앉는 서리
한 달이 지날 무렵, 박 씨는 유제품 냉장고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손님이 매번 우유를 꺼내는 그 칸. 세 번째 선반, 왼쪽에서 두 번째 자리. 다른 칸은 멀쩡한데 그 칸에만 하얀 서리가 두껍게 내려앉아 있었다.
처음엔 냉장고 고장인가 싶어 관리 업체에 점검을 요청했다. 기사는 냉장고 온도도, 냉매도 전부 정상이라고 했다. "이 칸만 서리가 낀다는 게 이상하긴 한데, 기계적으로는 문제없어요."
그 뒤로 박 씨는 유독 그 칸을 신경 쓰게 됐다. 계산대에 앉아 있다가도 무심코 고개를 들면, 냉장고 유리문 안쪽으로 뿌옇게 서린 성에와 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우유팩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리는 매일 조금씩 짙어졌다. 마치 누군가 그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었던 것처럼.
CCTV엔 없었다
박 씨는 결국 사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CCTV 영상이나 확인해보라고 했다.
새벽 3시 구간을 돌려봤다. 자동문이 열리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문이 열리고, 몇 초 후 다시 닫히는 장면까지.
그런데 그 사이,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냉장고 코너 쪽 화면도 확인했다. 서리가 낀 그 칸의 유리문이 열렸다 닫히는 장면은 찍혀 있는데, 문을 여는 손도, 우유를 꺼내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박 씨는 분명 두 눈으로 그 손님을 봤다. 계산대에서 카드를 받았고, 손끝이 스쳤을 때 소름 끼치도록 차가웠던 감촉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화면 속에는, 그 어디에도 사람이 없었다.
그것이 입을 열던 순간
그로부터 며칠 뒤 새벽 3시,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박 씨는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손님은 평소와 같이 냉장고로 향했다. 서리 낀 그 칸의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내 계산대로 다가왔다.
박 씨는 애써 태연하게 바코드를 찍었다. 그 순간, 손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아주 낮고, 어딘가 젖어 있는 소리였다.
"여기, 계속 있어도 돼요?"
박 씨는 무슨 말인지 되묻기도 전에 눈을 깜빡였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계산대 위 CCTV 모니터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화면 속 자신의 등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회색 옷을 입은 그 형체가, 바로 뒤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박 씨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었다. 계산대 앞도, 매장 전체도 텅 비어 있었다. 자동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우유 한 팩만 계산대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시 모니터를 봤을 때, 화면 속에도 더 이상 그 형체는 없었다.
아직도 그 시간이면
박 씨는 그날 이후 새벽 3시가 되면 일부러 냉장고 코너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칸의 서리는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 계산대에 앉아 있다 보면, 유제품 코너 쪽에서 냉기가 훅 끼쳐오는 걸 느낀다. 시계를 보면 어김없이 새벽 3시다.
박 씨는 그 편의점을 그만두지 못했다. 그만두려고 할 때마다, 마지막 근무일 새벽이면 꼭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릴 것 같아서였다.
"여기, 계속 있어도 돼요?"
그 질문에, 아직 아무도 답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편의점 브랜드, 매장, 인물이나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