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번의 왕복
김도윤 씨(가명, 30세)는 서울 외곽의 한 주상복합 오피스텔에서 일하고, 같은 건물 22층에 살았다. 사무실은 12층. 출근할 때 한 번, 점심 먹으러 나갈 때 두 번, 담배 피우러 나갈 때 두 번, 퇴근할 때 한 번. 하루 평균 여섯 번, 많으면 열 번 넘게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스테인리스 벽면은 흐릿하게 자신의 모습을 되비췄다. 3년 넘게 봐온 그 반사상은 이제 풍경의 일부나 다름없었다.
이상함을 처음 느낀 건 어느 늦은 저녁, 야근을 마치고 혼자 탄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문이 닫히는 순간, 거울 속 자신의 등 뒤로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게 보였다. 사람 그림자였다. 놀라서 고개를 홱 돌렸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그 혼자였다.
'피곤해서 그런가.' 김 씨는 그렇게 넘겼다.
반 박자 늦게 웃는 사람
그 뒤로 며칠에 한 번씩, 비슷한 순간이 반복됐다. 늘 혼자 탔을 때, 늘 거울 속에서만.
김 씨에게는 긴장하면 왼쪽 귓불을 검지로 두 번 톡톡 두드리는 버릇이 있었다. 아무도 지적한 적 없는,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할 때가 많은 버릇이었다.
그날도 문이 닫히길 기다리며 무심코 왼쪽 귓불을 두드렸다. 그런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딱 반 박자 늦게 같은 동작을 했다.
처음엔 조명 때문에 잔상이 남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거울 속 그는 웃고 있었다. 김 씨는 웃은 적이 없었다.
며칠 뒤, 12층에서 내려 반대편에 서 있는 다른 엘리베이터의 스테인리스 문을 지나칠 때였다. 문에 흐릿하게 비친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김 씨는 그날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흉터를 알고 있는 사람
경비실 앞에서 마주친 나이 든 경비원이 어느 날 지나가듯 말을 걸었다.
"이 건물 오래 사신 분들, 은근히 다들 비슷한 얘기 하시더라고요. 엘리베이터에서 자기랑 똑같이 생긴 사람 봤다고. 근데... 그거 봐도 절대 말 걸면 안 된대요. 눈도 마주치면 안 되고."
김 씨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그날 밤, 야근을 마치고 22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 문이 닫히기 직전, 거울 속 자신의 오른쪽 손목이 눈에 들어왔다. 소매가 살짝 걷혀 있었다.
그 자리에는 흉터가 있었다. 여덟 살 때 화상을 입어 생긴, 손목 안쪽의 자그마한 흉터. 소매로 늘 가리고 다녀서 회사 동료도, 심지어 가족 몇몇도 모르는 흉터였다.
거울 속 그의 손목에도, 정확히 같은 자리에, 같은 모양의 흉터가 있었다.
김 씨는 그날부터 엘리베이터를 탈 때 거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좁은 상자 안에서 시선을 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보름 뒤, 자정이 넘은 시각. 김 씨는 22층 버튼을 누르고 문이 닫히길 기다렸다.
거울을 보지 않으려 바닥만 응시했다.
문이 열렸다. 22층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복도 저편에 누군가 서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이었다.
같은 셔츠. 같은 자세. 다른 것은 표정뿐이었다. 웃고 있었다. 김 씨가 지금껏 한 번도 지어본 적 없는, 어딘가 뒤틀린 미소였다.
말을 걸면 안 된다고, 눈을 마주치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되뇌었었다.
하지만 몸이 먼저 반응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누구세요."
그것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정확히 김 씨의 것이었다.
"그니까... 내가 먼저 물어보려고 했는데."
김 씨가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붙이는 말버릇, 바로 그 말투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직 내려오지 않은 엘리베이터
그날 이후 김 씨는 사무실 동료들에게서 이상한 말을 듣기 시작했다.
"아까 로비에서 인사했는데 왜 못 들은 척했어요?" 그 시각 그는 12층 사무실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제 밤에 옥상에서 담배 피우시던데요." 그는 그 시간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고 기억한다.
김 씨는 이제 엘리베이터를 거의 타지 않는다. 계단으로 22층을 오르내린다. 그럼에도 가끔, 도착 층수 표시등이 22층에서 저절로 멈췄다가 다시 올라가는 걸 목격한다.
아무도 부르지 않았는데, 엘리베이터는 그 층에서 문을 연다.
김 씨는 그 안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안에 누가, 혹은 무엇이 타고 있을지 확인할 용기가 없어서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나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