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 47분, 시작된 통화
지수현 씨(가명, 23세)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예전부터 떠돌던 놀이 하나를 알고 있었다. 이름하여 이세계로 가는 엘리베이터 놀이. 정해진 순서대로 버튼을 누르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층에 도착해 낯선 공간으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녀가 사는 오피스텔은 지상 15층짜리 건물이었다. 방음이 좋지 않은 낡은 건물이었지만, 그만큼 월세가 저렴해서 3년째 혼자 살고 있었다.
그날 밤, 수현 씨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득 그 놀이를 떠올렸다. 그리고 친구 한서인 씨(가명, 24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그거 한번 해보려고. 그 엘리베이터 놀이.
서인 씨는 잠깐 말이 없다가, 웃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쳤어? ...근데 궁금하긴 하다. 통화 끊지 말고 해. 나 계속 듣고 있을게.
두 사람은 통화를 켜둔 채로 약속을 정했다. 서인 씨는 안전장치 역할을 자처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하라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즉시 그만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인터넷에 떠도는 규칙은 간단했다. 4층, 2층, 6층, 2층, 10층, 1층 순서로 버튼을 누를 것. 도중에 낯선 사람이 타면 절대 말을 걸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 것.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 낯선 층에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리지 말 것. 원래 살던 층에 도착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곧장 내릴 것.
4-2-6-2-10-1
자정이 가까운 시각, 수현 씨는 휴대폰을 스피커폰으로 켠 채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복도는 조용했고, 형광등 하나가 희미하게 깜빡이고 있었다.
문이 닫혔다. 그녀는 순서대로 버튼을 눌렀다.
4층. 2층. 6층. 2층. 10층. 1층.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잠시 멈춘 듯 흔들리더니, 다시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 지금 올라가는 거 같은데. 수현 씨가 속삭이듯 말했다.
층수 봐봐. 몇 층이야. 서인 씨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수현 씨는 숫자 표시판을 올려다봤다. 12, 13, 14, 15.
그리고 16.
이 건물은 지상 15층짜리였다. 16층은 있을 수 없었다.
숫자는 멈추지 않았다. 17, 18, 19, 20을 지나 마침내 22에서 멈췄다.
그와 동시에 천장의 조명이 깜빡이더니, 원래의 하얀 불빛 대신 탁하고 어두운 주황빛으로 바뀌었다. 마치 오래된 필름을 통해 보는 듯한 색이었다.
수현아, 뭐야 지금. 야, 대답해 봐. 수화기 너머 서인 씨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수현 씨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
22층, 낯익지만 낯선 곳
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밖은 분명 수현 씨가 사는 오피스텔 복도와 똑같았다. 같은 재질의 바닥, 같은 간격으로 놓인 소화전, 같은 위치의 창문.
하지만 미묘하게 달랐다.
비상구 표지등은 원래 초록색이어야 했다. 그런데 그곳의 표지등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복도 끝에는 원래 없던 화분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 심긴 식물은 잎이 전부 아래로 축 처져 있었다. 공기 중에는 옅게, 젖은 흙과 오래된 종이가 섞인 듯한 냄새가 떠돌았다.
수현 씨는 문이 열린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층에서는 절대 내리지 말 것. 놀이의 규칙 중 하나였다.
지수현, 내리지 마. 절대 내리지 마. 서인 씨가 속삭이듯 반복했다.
수현 씨는 내리지 않았다. 대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틈으로, 복도 저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깨가 부딪히던 순간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복도에서 누군가 빠르게 걸어와 그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젊은 여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로 얼굴 반쪽을 가린 채, 시선은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수현 씨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낯선 사람이 타면 말을 걸지 말 것. 눈을 마주치지 말 것. 규칙이 다시 떠올랐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벽 쪽으로 몸을 붙였다. 여자는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았다. 그저 문을 등지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숫자는 거꾸로 줄어들었다. 22, 21, 20.
그 순간,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자의 어깨가 수현 씨의 어깨에 스치듯 부딪혔다.
반사적으로, 몸에 밴 습관처럼 말이 튀어나왔다.
아, 죄송합니다.
말을 뱉은 직후, 수현 씨는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규칙을 어긴 대가
그 순간 수화기 너머 서인 씨의 목소리가 지지직거리며 끊겼다. 전파가 갑자기 나빠진 것처럼, 목소리는 뭉개지고 늘어지다 완전히 잡음으로 바뀌었다.
엘리베이터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여자의 고개가 완전히 이쪽을 향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머리카락이 그대로 흘러내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현 씨는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숫자판이 15, 14, 13, 빠르게 줄어들었다. 수현 씨는 눈을 질끈 감고 벽에 등을 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띵, 소리가 울렸다. 12층. 그녀가 실제로 사는 층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수현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쳐나왔다. 원래 살던 층에 도착하면 뒤돌아보지 말고 바로 내릴 것. 규칙이 그랬다.
현관문을 잠그고 나서야 그녀는 휴대폰을 다시 귀에 댔다.
서인아. 서인아, 들려.
지지직거리던 잡음이 사라지고, 서인 씨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야, 갑자기 왜 끊겼었어. 나 완전 놀랐잖아. 무슨 일 있었어.
수현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직도 들려오는 노크 소리
그 뒤로 몇 주가 지났다. 수현 씨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그 놀이를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가끔, 아주 가끔, 새벽 시간에 현관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린다. 딱 두 번. 톡, 톡.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낮게 가라앉은 여자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린다.
아, 죄송합니다.
정확히 그날 밤, 수현 씨가 무심코 뱉었던 그 말 그대로.
문을 열어본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열지 않을 생각이다.
수현 씨는 지금도 그 오피스텔에 살고 있다. 서인 씨는 지금도 가끔 묻는다. 그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수현 씨는 매번 같은 대답만 되풀이한다.
나도 몰라. 근데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
이 이야기는 완전히 창작·각색된 콘텐츠입니다. 실제 존재하는 인물, 장소, 사건과는 무관하며, 등장인물은 모두 가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