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귀가
올해 31세인 정 씨(가명)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23층에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IT 회사에 다니는 정 씨는 야근이 잦았고,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3월 초의 어느 금요일 밤. 시계는 새벽 1시 14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정 씨는 아파트 로비에 들어섰습니다. 로비는 텅 비어 있었고,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습니다.
문이 열렸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 사람이 있었습니다.
남자였습니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 엘리베이터 구석에 서 있었습니다.
정 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같은 아파트 주민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23층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다른 층 버튼이 하나도 눌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 남자는 어디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탄 걸까.
이름을 아는 사람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3층. 5층. 8층.
침묵이 흘렀습니다. 정 씨는 핸드폰을 꺼내 화면을 보는 척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낯선 사람과 둘이 있는 것이 약간 불편했습니다.
12층. 15층.
"정민호 씨."
정 씨는 핸드폰에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로.
"정민호 씨, 23층이요?"
정 씨의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습니다.
정 씨의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같은 아파트 주민 중에 저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습니다. 3년째 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네... 아, 혹시 같은 동 사시는...?"
남자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미소를 지었습니다. 입꼬리만 올라간, 눈은 웃지 않는 미소였습니다.
18층. 20층.
"오늘 많이 늦으셨네요."
정 씨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일 보고 있거든요."
22층. 23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습니다. 정 씨는 거의 뛰다시피 엘리베이터에서 내렸습니다.
뒤돌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본능적으로 돌아봤습니다.
엘리베이터 안.
남자는 같은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같은 미소를 짓고.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문이 닫혔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
정 씨는 현관문을 잠그고, 체인까지 걸었습니다.
그날 밤 잠들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정 씨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새벽 1시 14분 전후로 엘리베이터 CCTV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관리소장이 영상을 틀어줬습니다.
새벽 1시 14분. 로비. 정 씨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상 속 정 씨는 빈 엘리베이터에 타서 23층 버튼을 누릅니다. 23층에서 내릴 때, 뒤를 돌아봅니다.
빈 엘리베이터를 보면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습니다.
관리소장이 물었습니다.
"누구 찾으시는 건가요?"
정 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매일 보고 있다는 말
그 뒤로 정 씨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습니다. 23층까지 계단으로 다녔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뒤.
계단 15층과 16층 사이 창문에서. 정 씨는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봤습니다.
주차장 구석. 가로등 아래.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가 서 있었습니다.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정 씨가 서 있는 창문을.
그리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입꼬리만 올라간, 눈은 웃지 않는 미소.
정 씨는 다음 달 이사했습니다.
새 아파트에서의 첫날 밤. 정 씨는 현관 도어락의 방문자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입주 전 비어있어야 할 기록에.
방문자 1명. 새벽 3시 13분.
기록된 사진에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도어락 앞에 서 있던 그림자의 윤곽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실제 체험담을 바탕으로 각색되었습니다. 체험자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특정 장소를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심장이 약하신 분은 주의해 주세요.